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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 Comrade

2019.12.13 - 12.29

김성혜 김혜미 민서정 박진이

김세중 미술관 

서울시 용산구 효창원로 70길 35

 기획 | 김혜미   디자인 | 김은희   연구협력 | 민서정 이유니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A miracle for all!   

| 김혜미
 

 

Comrade

  조디 딘Jodi Dean은 ‘콤래드에 관한 4개의 논지’에서 콤래드를 동질감과 평등, 신의와 연대로 이루어진 공동체라고 정리하며 콤래드로 규정할 수 있는 이상적이면서 모범적인 성격과 덕목에 대해 설명한다. 시종일관 뜨거운 열의와 관계의 끈끈함이 느껴지는 논지 가운데 유독 냉정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항목이 눈에 띄는데, 그것은 “누구나 콤래드가 될 수 있으나 모두는 아니다 Anyone but not everyone can be a comrade”라는 것이다. 이어서 딘은 가족, 이웃, 국민, 심지어 친구라고 해서 모두가 콤래드로 불릴 수는 없다고 설명하며 콤래드로 구별할 수 있는 핵심적인 조건은 동일한 정치성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콤래드는 성별, 국적을 비롯한 다른 모든 조건을 초월하여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같은 정치적 이념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누구라도 콤래드가 될 수 없다.

                                                                                 

 

Anyone 1.

  콤래드라는 단어가 함의하고 있는 정치성은 소련이 붕괴하면서 퇴색하긴 했지만 콤래드는 현재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다. 현재는 과거보다 더 유연하고 확장된 의미로써 친구, 벗, 동료를 뜻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친구friend의 느낌과는 조금 다르다(사전에 의하면 콤래드의 동의어는 companion, mate, associate, colleague이고, 친구friend는 힘들거나 위험한 상황을 함께 겪은 사람으로 특정한다). 이는 더 이상 공산주의로 함축되는 콤래드의 정치성이 유효하지 않은 현재에도 콤래드가 친구도 당원도 아닌 어떤 특수한 범주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즉, 앞서 언급한 것처럼 누구나 콤래드가 될 수 있지만, 여전히, 모두는 아니다.

 

Anyone 2.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의 <도래하는 공동체>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도래하는 존재는 임의적 존재이다.” 여기에서 “임의적 존재quodlibet ens”는 “어떤 것이든 무관한/무차별한 존재”를 의미하는데 콤래드의 일원이 될  잠재력을 지닌 집합인 anyone(누구든 상관없는/아무나)과 사실상 그 의미가 같다고 할 수 있다. 아감벤은 ‘임의적’이라는 단어 “quodlibet”를 분석하여 그 안에 숨겨진 놀라운 비밀을 하나 알려 준다. 그것은 이 단어가 “어떤 것이든 무관한”이란 뜻이 아니라 실상은 그 정반대의 의미인 “어떤 것이든 다 마음에 드는", “공히 마음에 드는", “공히 사랑받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Everyone

  이때 우리는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고 말하는 ‘임의성’도 사실 어떤 특수한 범주-마음에 드는 아무-에 위치하고 있음을 의식하게 된다. 아감벤은 이 임의성의 범주에 대해 흥미로우면서 아름다운 해석을 하는데, 임의성은 특정한 집합의 귀속을 조건 짓는 개별적 속성에 속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개별성이 부재하지도 않고 집합의 보편성만을 향하지도 않는, ‘그것이 존재하는대로 존재하는 것’, 다시 말해 스스로에게 귀속되어 ‘그 귀속성 자체를 지향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우정이 친구의 이런저런 속성(금발이다, 작다. 보드랍다. 다리를 절다)을 향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무미건조한 보편성(보편적 우정)이라는 미명하에 친구의 속성들을 도외시하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 그렇게 존재함을 원하는 것과 같다.

  아감벤의 해석은 우리가 지향하는 콤래드의 귀속 조건에 어떤 실마리를 제공한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지향해 온 목표인 ‘개인의 고유함을 유지하면서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은 임의적 존재처럼 특수자와 보편자의 이율배반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자신의 특이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존재는 콤래드가 본래부터 주장했던 것처럼 사적인 개별성에 무관하더라도 개별을 귀속하는 모든 술어를 거부하지 않고, 궁극의 연대를 추구하더라도 어떤 흔한 협회나 단체처럼 추상적인 공동체의 일원도 아닌, 관대하지만 동시에 엄격한 범주에 위치한다.


 

OK

  그런데 이 범주에 속하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왜냐하면 너무나 이상적일 뿐만 아니라 범주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조건을 충족하는 어떤 존재로 변화할 것을 -‘어떤 것이든 공히 마음에 드는 존재’가 되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심보선은 ‘우정으로서의 예술’에서 텅 빈 우정의 친구는 일상적이고 구체적이지만 동시에 나에게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몸짓, 표정, 말, 행동을 요청한다., 텅 빈 우정의 친구는 나에게 어떤 존재로 변화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콤래드가 되는 것은 실천practice을 전제로 한 일종의 도전이다. 심보선이 “텅 빈 우정이 요구한대로 ‘되기(becoming)’를 추구하고 성취하며, 그 되기(becoming) 자체가 나에게 기쁨과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해답을 주는 것”이라고 고백한 것처럼 콤래드는 ‘콤래드-되기'에 기꺼이 기쁨으로 응하고 행동하는 것이며, 그렇게 할때 우리의 고유성이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시몬 베유Simone Weil는 사랑에 관한 그녀의 단호한 사유에서 우정은 은총에 속한 것이라고 말했다. 우정은 예술이나 인생이 주는 무보수의 기쁨처럼 여분으로 주어지는 것에 속하며, 구해서 얻는 것도 아니고 꿈꿀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바랄 수 있는 것도 아닌, 행해지는 것이다. ‘콤래드-되기’도 이것과 비슷한 영역에 속한다. 은총, 축복, 기적과 같은 단어는 실천을 통해 현실화된다. 실천할 때 공히 마음에 드는 우리는, 누구든 상관없이 OK라고 대답할 수 있다.


 

OK, Comrade.

  이 책은 실천이라는 이름하에 행해진 예술 활동을 기록한 자료집이다. 기록의 형태와 성격에 따라 2권의 책과 1부의 리플릿으로 구성되었다. 자료집에 기록된 모든 활동이 모종의 흐름을 가지고 있듯이 각 권 또한 서로 관계한다.

  각각의 활동은 전시에 참여하는 모든 일원에게 즉시 공유되어 물리적 거리와 분담된 역할에 상관없이 유연한 반응과 교류가 일어나길 유도했다.

 

사진 | 최연근